My Testimonies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3월 31일

36세 정지웅 형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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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5월 9일

얼마 전 SNS를 통하여, 결혼한 친구의 단란한 가족사진을 보았다. 천사처럼 예쁜 딸과 참한 아내, 행복해 보이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정말 부러웠다. 그리고 ‘내가 만약 결혼했더라면 나도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이나 딸아이가 있었을까’하는 생각에 가슴 한 편이 먹먹해졌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 내겐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남들과 다른 소수로 살아간다는 것은 때론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행복한 순간들을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함을 뜻한다. 그것은 참 잔인한 일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이루는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 그들의 행복은 결코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욕심내어서는 안 되는 것. 내게 감히 허락되지 않은 것. 아무리 발버둥 치고 손을 뻗어보아도 그 행복은 내가 닿을 수 없는 백만 광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내게도 좋아하는 남자가 있었다. 나는 대학 새내기였고 그는 한 학번 위 선배였다. 이것은 그동안 누구에게도 쉽사리 꺼내놓지 못했던 나의 꽃다운 시절 이야기다.

 

 

누군가 내게 왜 그리 괴로워하는지 물으면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남자가 있노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저주받은 줄 알았다. 애초부터 스스로를 잘못 만들어진 불량품 같은 존재라고 여겼다. 아, 신도 실수를 하시는구나. 만약에 신이 있다면.

 

 

삶은 고달팠다. 외로움은 숙명이었다. 친한 친구에게조차 비밀을 털어놓을 수 없었던 나는 모든 괴로움을 혼자 짊어지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를 좋아하는 마음이 너무 커져서 더 이상 억누를 수가 없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를 불러내 당신을 오랜 시간 동안 좋아해왔노라고 고백을 했다. 그는 여성을 좋아하는 평범한 남성이었기에 우리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몇 시간을 기다려 마음을 전하고 애써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돌아서는 길에, 하늘에서는 때마침 하얀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리는 하얀 눈을 축복처럼 온몸으로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느라 현관문부터 내 방까지 표정을 숨기고 걸었다. 그리고 방문을 닫는 순간, 끝내 눈물이 흘렀다. 괜한 이야기를 해서 다시는 그를 못 볼 것 같은 두려움과,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바보 같은 나에 대한 원망이 교차했다. 그리고 태어나서 두 번째로, 어디론가 이대로 영영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잔인했던 순간에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갔고, 나의 20대는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이 뒤범벅되어 늦가을 꽃잎처럼 하나둘씩 힘없이 떨어져갔다. 나는 그렇게 시간에 기대어 추억은 추억대로 가슴에 묻어둔 채 현실에 젖어드는 법을 배워갔다. 갈대처럼 흩어지던 그때의 나는 이제 가고 없지만, 아픔은 서서히 아련한 기억으로 승화되어 마음속에 굳은살처럼 자리 잡게 되었다.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흐르고서야 알았다. 나는 잘못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나도 역시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움도 미련도 조금씩 희미해져 가던 어느 날, 나는 운명처럼 하나님을 만났다. 그것은 삶의 기적이자 축복이었다.

 

 

하나님을 알고 나서, 예전의 어둡고 슬펐던 나로부터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매일매일 한 발짝 씩 나아가고 있다. 어른이 되어 세상을 알게 되고 세상에는 생각보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어릴 적의 꿈과 용기를 잃어버렸다. 거친 세상과 마주하고 상처 입을수록 나는 점점 내 안의 깊은 곳으로 숨어 들어갔다. 하지만 이제 세상의 근심 걱정을 벗어버리고 어린 시절의 밝고 행복했던 원래의 나로 조금씩 돌아가고 있다. 하나님을 알게 되고 사실 세상의 일들은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주님과 함께하며 찾아든 변화들이 너무 놀랍고 아름다워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나누어주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편지를 띄운다.

 

 

나는 내가 남들처럼 평범하지 않았던 것을 감사하기로 했다. 남들과 똑같았다면 평생 하나님을 모르고 살았을 테지. 그 어떤 간절함도 내겐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남들처럼 평범하지 않아서 스스로 미워하기만 했던 과거의 나를 진심으로 용서하고, 안아주고 보듬어주기로 했다. 예전의 아팠던 나를 걷어내고, 나 자신이 되기로 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알고 나서부터 시작되었다.

 

 

조금만 더 귀를 기울여보면 세상은 내게 참 많은 이야기들로 제각기 말을 걸고 있었다. 길을 가다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은 그동안 알던 것보다 훨씬 더 높고 푸르렀고, 늘 나를 스쳐가던 차갑고 시린 바람은 어느 날부터 박하사탕 같은 청량함으로 내게 다녀가기 시작했다. 다니던 길가 화단에 서 있는 한그루 나무가 참 우아하고 고풍스럽다는 것을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다.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나무를 보고 참으로 아름답다고 소리 내어 말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 내 옆에 있었구나. 그랬구나. 그랬었구나. 그리고 이 모든 아름다운 것을 지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그동안 참 많은 길을 돌아왔다. 어쩌면 앞으로 더 많은 험난한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은 늘 내가 어느 한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하고 있었고, 나는 이제야 비로소 그것을 깨달았다. 확실해진 것은, 내 손에 주어진 나침반으로 인해 길을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덜 해졌다는 것.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먼지 한 번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날만한 용기가 생겼다는 것. 영영 아물지 않을 것 같던 상처에 아 이제 조금은 괜찮은 것 같다고 담담히 읊조릴 수 있게 된 것. 그리고 외로움이 맹수처럼 나를 덮쳐올 때 언제든 피할 수 있는 든든한 울타리가 생겼다는 것.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괜찮아졌다. 어쩌면 이제 더 이상 예전처럼 아파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겨우내 얼어붙어있던 차가운 눈이 조금씩 녹고 있다. 봄이 저만치 멀리서 내게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만 같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시편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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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정체성으로 고뇌하는 청년들에게 (딤전 4:7,8)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어느 것에 취해 있을 때에는 백약이 무효이라 그 무슨 말로 설득을 하며 또 위로할 수 있을까? 스스로 죽을 수 없는 목숨이기에 견디며.. 스스로의 굴욕과 사람들의 모욕을 견디며 살아가는 너희들... 혹시 이런 편지를 보고 부질없는 노인네의 넉두리라고 생각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해야겠다. 내가 살아 있는 날이 그리 넉넉지 않을 것을 않기에... 또 너희의 영혼을 위해 애통해야할 사람들이 없을 것 같기에.. 나를 위해 목숨을 던지신 내 어머니의 심령을 빌어 첫 번째 글을 쓸까 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실로 아름다운 일이다. 살아있기에 숨을 쉴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으며 또 소망을 가질 수 있으며 돌이킬 수 있다. 살아있기에 인간은 그 소유된 생명의 틀 속에서 하루를 펼치고, 또 접으며,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인생을 달려가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인생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은 누구에게나 가슴에 묻어 둔 인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지 간에 자기의 인격을 대변하는 무형의 분신들이다. 또한, 그것들은 자기 투쟁의 현장이면서도 결코 스스로 쥘 수 없는 칼자루이다. 이처럼 모든 인생은 스스로 거부할 수 없는 죄의 벽장 속에서 숨을 쉬고 있다. 만약 사람이 자기의 인생을 자기 지혜로 연출해 나갈 수 있다면 실패한 인생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의지대로 쓰지 못하는 인생의 일기장은 결국 그 영혼의 판결문이 되어 그 육체를 마감하는 날까지 보전된다. 그러나 그때는 돌이킬 수 없는 유한의 시간과 무한의 공백이 교차되는 분기점이다. 불행하게도 많은 인생들이 육체의 호흡이 정지된 그 시점에서야 자기 영혼에 은밀히 개입된 가증스런 얼굴, 곧 자기 영혼에 개입한 더러운 영들이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사람의 과거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그 책임은 결국 자기에게 있다. 그러나 만약 호흡이 있는 동안에 전능자의 권고를 받을 수 있었다면 그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그날에 그는 자기에게 관여한 더러운 영들의 사슬을 능히 풀 수 있는 주인의 이름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에는 수치로 가득한 인생의 너절한 일기장은 피의 구속을 받아 더 없이 하얀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그날로부터 그의 인생은 더 이상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의 일기장은 사람의 손으로 쓰지 않은 생명의 이야기들로 가득하게 기록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아름다운 생명의 매력 속에서 당신의 영혼은 영생의 쉼을 얻게 될 것이다. ‘동성애’, 이 단어는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에서 지워버릴 수 없는 삶의 흔적이다. 동성애라는 단어를 보는 것만으로도 난도질당한 기억 곳곳에서 피고름을 쏟아낸다. 누구든지 이 사슬에 얽히면 스스로 그 멍에를 끊고 나올 장사가 없다. 이 육체의 족쇄는 자극의 원리를 상실한 채, 머리와 꼬리가 뒤엉켜버려 풀어질 수 없는 수억의 뱀 더미와도 같다. 또한, 이들은 브레이크 끊어진 고속열차의 굉음 같아서 죄의 수(數)가 차기까지는 결코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한다. 그러나 나의 주인은 내가 지음을 받던 날부터 내 혼이 죄를 거절하지 못할 때에도 묵묵히 나를 목도하며, 내 혼이 죄의 역사를 미워할 때까지 인내하고 계셨다. 이로써 나는 그의 사랑이 태초부터 나를 향하고 있었음을 믿는다. 그의 충만한 사랑이 나의 연약한 호흡들을 한 가닥씩 세며 은혜 위에 은혜를 더하셨던 것이다. 이는 그의 자비가 태초로부터 예정된 언약 속에서 나의 인생을 섭리하고 있었던 것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긍휼하신 인내가 진실하고 온전한 사랑인 것을 믿으며, 나 또한 남은 호흡을 그의 위대한 사랑을 위해 인내의 세월을 쌓고자 한다. 부디 이 부족한 사람의 삶의 증언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갈급한 모든 영혼들 위에 베풀어지기를 기원한다. 리애마마 서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 탈동성애자 이요나
  • 김상우 (36세, 다큐멘터리 & CF 감독) 갈보리채플 서울교회 (담임 이요나 목사) / 홀리라이프 / 갈보리채플 성경대학 (먼저는 나를 키워주시고, 기다려주시고, 기도해주신 존경하는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으로 제 곁에 계셔 주셔셔 감사합니다.) 제 인생에는 조금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적부터 여성보다는 남성이라는 존재에 대해 애정과 설레임을 느꼈습니다. 호기심이었을 수도 있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 조금 위험한 모험이라고 생각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제게 타고난 것이며, 나중에 남들과는 다른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마저 가지며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회에 다니던 저는, 육체와 정신이 성장함과 동시에 여러 사람들을 통해 예수님의 참사랑을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남몰래 누리는 음행과 쾌락에 눈이 먼 자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동성애와 욕정이 예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중독 같이 헤어나오지 못하는 쾌락의 이중생활과 함께 점점 고뇌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20대 부터 교회에서 청년부 활동을 해왔습니다. 찬양이 좋았고, 목청껏 기도하는 청년부 선배들을 보며, 저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한 철야 금요예배 때, 저는 고요하고도 비밀스러운 마음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짧은 찰나에 제가 계속 갈구하던 동성애가 “죄”라는 명확한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4장의 “씨뿌리는 비유”의 이야기에 나오는 바 같이 돌밭같은 제 마음에 말씀과 기도 생활이 뿌리 내리지 못한 채, 저는 이전보다 더 깊이 그것을 갈구하게 되었습니다. 그 깨달음 이후에도 여전히 찬양의 멜로디에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고, 간간이 진정으로 예배를 드렸지만 이중생활은 계속 되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수년전 까지, 저는 크리스천이면서, 직장인이었고, 동성애자였습니다. 누구도 제게 동성애자라는 굴레를 씌운 적이 없고, 수근댄 적도 없지만, 스스로 규정한 제 모습이었습니다.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나 외로움을 육체의 욕정으로 해소하고, 낯선 만남을 갈구하고, 채워지지 않는 허무한 행위들에 사로잡혀 살던 저는 그 시절의 감정을 뼛속 깊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이해 할 수 없는 살을 에는 듯한 허망한 고통이었습니다. 저는, 제 결심과는 다르게 이끌리는 육체의 속성에 “차라리 떳떳하게 동성애자로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며 매번 혼란을 겪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내다가도 밤만 되면 밀려오는 유혹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그 속으로 빠져들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죄에 빠지면, 사람은 위축되고 공격성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가장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던 가족들을 만나도 불편하고 주눅이 들었고, 오히려 그분들께 분노가 표출되는 저를 보며 상반되는 마음과 행동에 무척 괴로웠습니다. 당시에 저는 괴로울 때마다 해외의 동성애 극복 간증을 찾아보며 아주 작은 소망을 가지게 되었었습니다. 죄에 빠진 후에도 허탈함을 달래려 “약할때 강함 되시네”의 작곡자이자 탈동성애자인 데니스 저니건의 간증등을 보며 어떤 위로를 받으며 잠들곤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도 그러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니, 한국인이면서, 그리고 목사님이 어떻게 저런 고백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지?” 동성애가 대세로 떠오르는 이 판국에 사실은 좀 부담스러우면서도, 불편한 외침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기억하기로는 4년 전 연말, 죄에 허덕이던 저는 이제는 이 분을 한번 만나봐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저히 괴로움이 가시지 않을 때, 지푸라기 같은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생각보다 매우 가까운 곳에 교회가 있었고 그날 저녁, 곧바로 상담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첫 만남은 생각보다 편한 마음이었습니다. 이 분도 나와 같은 아픔을 가졌던 분이라는 것이 큰 위안이었던 거 같습니다. 예전엔 동성애자 세계라는 소수에 발을 들이며 위안을 얻었다면, 이제는 그보다도 더 소수인 탈동성애자라는 그룹을 만난다는 것이 무언가 흥미(?)롭기까지 했습니다. 목사님은 고린도전서 6장 9-11절 말씀을 펼치며, 저의 이 생활이 계속된다면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받지 못할 것이란 것을 명확히 알려주셨습니다. 왜 전 이 말씀을 보지 못 했었을까요? 아니 깨닫지 못 했었을까요? 제가 스스로의 죄를 은밀하게 꽁꽁 싸매고 있던 것과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 한 구절의 말씀이었지만, 제가 머뭇거리던 부분에 성경이 명확히 어떠한 말을 하고 있는지 가르침을 받았던 그 순간, 동성애 문제로 항상 혼란을 겪던 저의 불안한 자아가 깨침을 얻었던 거 같습니다. 예수님은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 분을 통해서 말씀으로 저에게 알려주고 계셨습니다. 그 후로 4년반이라는 세월이 지나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간동안, 하나님은 제게 비밀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주셨고,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주셨습니다 영상감독인 저는 자연스레, 교회에서 진행하던 동성애 사역과 관련된 영상을 만들게 되었고 이를 위해 많은 행사와 일들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퀴어축제에 관람자로 참여하던 제가 이제는 그때와는 다른 입장으로 교회의 사역에 참여하게 되며, “반동성애, 극단적 반동성애, 탈동성애, 퀴어 진영”을 넘나들며 촬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어딘가에 속해 있으며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다는 묘한 감정에 휩쌓였습니다. 20대 중반 시절의 친구들이 퀴어 페스티벌의 본부 쪽에서 무리를 형성하고 트럭위에서 여장을 하고 춤을 추는 모습이 제게는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한 시간을 겪으면서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퀴어 축제에서 가장 불편했던 것은 다름 아닌 기독교 반동성애운동을 펼치며 내건 문구들이었습니다. 죄에서 영혼을 구하려는 그분들의 처절한 절규도 이해가 갔지만, 그것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너무도 거칠고 아픈 말들이었습니다. 퀴어축제에 대응하여 우리가 해야 할 고민들에 대해 제가 느낀 것들을 제 나름대로 문서와 영상으로 정리해보았고, 목사님은 그것들을 적극 수용해 주셨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제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란 자만도 있었지만, 목사님과 함께하며 배운 것들을 단순히 저의 기능으로 풀어 놓았던 것 같습니다.) 또한, 약함과 실패가 예수 안에서는 자랑이 될 수 있는 놀라운 신비를 체험한 저는 교회와 목사님을 돕는 일을 멈춰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들은 다른 교회에 자랑하거나 보여주려는 메세지도 아니고, 동성애자들을 정죄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목사님과 함께, 우리는 “나와 같은 고민을 겪는 한 영혼”을 위해 복음의 메세지를 전하는 행사를 매년, 기획 중에 있습니다. 저는 동성애가 영적인 싸움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밖에는 해결 될 수 없는 여러 종류의 죄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 또한 확신합니다. 무엇이 부끄럽습니까? 수많은 죄 가운데 내 과거가 어찌 되었던 그것으로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일 만큼 자랑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제게 육체의 가시 같은 이 죄의 문제가 있으므로 저는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매일 내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찬양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제게 간증이고 감사입니다. 저는 이 비밀스러운 기쁨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전에 제가 그랬듯이 제 간증이 누군가에게 소망이 되길 바랍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린도 후서 5;17) 2019.4월 김상우
  • 첫 기억은 초등학교 1학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반 반장은 그야말로 엄친아였습니다. 얼굴도 잘생겼고, 공부도 운동도 잘했으며, 친구들과 사교성도 좋았습니다. 반면 무척이나 소심했던 저는 그와 친해지고 싶었지만 말 한마디 걸지 못했습니다. 간절히 바랬습니다. 부디 그가 내 존재만이라도 알아주었으면.. 밤마다 꿈을 꾸며 원인모를 괴로움에 끙끙 앓았습니다. 사춘기에 찾아올 법한, 그저 단순한 동경이었을까요.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치부하기엔 그 열병은 너무나 지독했습니다. 스무살이 되기 전까지 저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수 없었습니다. 남중, 남고를 다니며 늘 남자들 사이에서 어울렸던 학창 시절에는 그런 것들이 별로 티가 나질 않았습니다. 그저 ‘우정이 남다른 아이’ 정도로 여겨졌을 뿐입니다. 그러나 제 속은 달랐습니다. 그것은 욕망이었습니다. 악마에 영혼이라도 팔아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은, 참을 수 없이 강렬한 욕망. 그런 비슷한 일들이 반복해서 지나갈 때마다 마음 속에 깊은 생채기가 남는 것 같았습니다. 그 생채기는 작은 구멍을 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져갔으며 마침내 블랙홀처럼 걷잡을 수 없이 깊은 수렁을 만들었습니다. 그건 마치 마음 한 구석에, 채워져야 할 때 채워지지 못해 영원히 채울 수 없을 것만 같은 커다랗고 텅 빈 공간이 있는 듯한 공허함이었습니다. 그 공허함이 문제였습니다.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일찍 취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쯤 제 안을 잠식하던 공허함은 이제 외로움과 뒤섞여 주체할 수 없는 갈증을 자극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만남은 육체적이었습니다. 가끔은 서로 진지하게 고민을 나누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옆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 이런 감정이 사랑인가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끝은 항상 육체적 만족이었습니다. 일단 욕구가 충족되고 목적이 달성된 후에는 완전히 딴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상대를 마치 일회용품 대하듯..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냉정함, 인간의 것이 아닌 듯한 그 무정함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습니다. 동성애도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동성애를 경험해 보지도 않은 사람들은 정치적인 셈법으로 차별 금지라는 프레임을 들이댑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떠한 정서적 교감을 나누었든 모든 것은 육체를 빼면 빈 껍데기일 뿐인 관계라는 것을.. 그건 동성을 향한 견딜 수 없는 집착일 뿐입니다. 저는 동정이 아니라 자유를 원합니다. 동성애란 마치 바닷물을 마시듯 점점 더 심해지는 갈증입니다. 아무리 채워도 절대 채워지지 않는 밑빠진 독과 같습니다. 그것은 내 이성을 마비시키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모든걸 집어삼킵니다. 내 삶을 완전히 파멸시키고 그 끝을 보기 전까지 절대 멈추지 않습니다. 동성애의 또 한가지 문제는 필연적으로 방탕함을 야기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도미노처럼 한 가지의 죄가 또 하나의 죄를 불러옵니다. 매일 이어지는 폭음, 기침으로 피를 토할 때까지 피우던 담배.. 그 나이에 적지 않은 돈을 벌었지만 쓰는 돈은 더욱 많았고 카드 값을 막기 위해 은행의 대출까지 손을 대었습니다. 체중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 갔고 천식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럼에도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매일 밤 끊임없이 사람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때로는 돈을 주어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견딜 수 없는 허기가 저를 이끌었습니다, 부모님들에게는 믿음직한 아들, 직장에서는 한없이 성실하고 능력 있는 동료였지만 해가 지면 돌변하는 괴물.. 상상히 가시나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술에 취한 밤이면 이중적인 삶 속에서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누구도 나를 이해할 수 없다.. 눈물도 나오지 않는 슬픔, 아니 그건 절망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역시 술에 만취했었습니다. 그런데 바닥에 나뒹굴던 카드값 청구서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돌려막던 카드값이 이제 한계에 다다랐음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두려움에 밤새 잠을 잘 수가 없었고, 갑자기 숨이 쉬어지지 않는 공황장애와 같은 증상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만 죽고 싶다, 다 끝내고 싶다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간절히 바랬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출발하고 싶다. 잘못된 단추를 모두 풀고서라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누군가 나를 이 더러운 삶에서 꺼내 주었으면. 너무나 살고 싶다, 누군가 나를 구원해 주었으면. 그러나 탈출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벼랑 끝의 심정으로 기도했습니다. 제발 나를 옭죄는 이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보여달라고.. 그리고 정말 우연히 유투브를 검색하다 한 목사님의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삶은 특별했습니다. 큰 아픔이 있으셨고 마침내 동성애의 속박에서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말했습니다. “동성애가 타고난 줄 알았다. 왜냐하면 동성애는 알 수 없을 때부터 내 혈관의 피처럼 흐르고 있었고, 나라는 사람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 분은 정말 이 문제를 아시는 분이구나. 많이도 울었습니다. 그리고 귀한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처음 교회에 갔을 때 그 따듯함을 기억합니다. 목사님도 형제 자매들도 제 과거를 묻지 않았습니다. 어느 교회에서처럼 종이를 들고 예수님에 대해 설명하려 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이들에게서 예수님을 느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저를 반겨 주었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저에게 말을 걸어 주었고, 망가진 저와 같이 커피를 마셔 주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아무런 가식도 없었습니다. 반면 저는 온통 거짓과 이중성으로 얼룩진 위선덩어리였습니다. 그날 짧은 순간 이들과 함께하며 평생 경험하지 못했던 진정한 평안을 느꼈습니다. 저는 너무나 기뻐서 출석 첫 날 그들에게 중국요리를 대접했습니다. 식사를 하며 올 3월부터 ‘갈보리채플 바이블칼리지’를 개강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은 2년 동안 오직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모든 성경만을 가르친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이미 마음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돌아갈 곳도 없었습니다. 성경 한 장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첫 강의에서 목사님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알고 있습니까?” 모를 리가 없지요. 교회는 제대로 다니지 않았지만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크리스천이 아니더라도 전 세계에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제 이름을 알고 있습니까? 알지요. 그럼 이름을 알면 그 사람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본 지 얼마 안된 범수 형제는 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그보다 오래 나와 함께했던 제자들은 범수 형제보다 나를 더 잘 알 것입니다. 그럼 나의 누이와 동생은 또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이름을 안다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예수의 이름만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분에 대해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바로 말씀입니다. 말씀 속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말씀이 곧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이나 간음하는 자들이나 여자처럼 행세하는 자들이나 남자 동성연애자들이나 도둑질하는 자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들이나 주정뱅이들이나 욕설하는 자들이나 착취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고린도전서 6:9~10) 그러나 성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너희 가운데도 이런 일을 행하였던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의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린도전서 6:11) 아, 이거 해결될 수 있는 것이구나. 저는 터지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아야 했습니다. 그렇게도 익숙했던 이름이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예수(Jesus, 구원자)’, ‘그리스도(Christ, 기름부음 받은 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분. 그 후 1년이 지났습니다. 갈보리채플에서 말씀은 그치지 않습니다.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시편 18:28) 제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입니다. 말씀 속에서 제 어두움은 조금씩 걷히고 차츰 인간 본연의 본성을 회복해 갑니다. 저는 필연 어둠속에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빛의 소중함도 절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제가 그동안 얼마나 심각한 상태였는지 더욱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나쁜 습관들은 차츰 정리가 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스레 술도 끊고 담배도 끊어졌습니다. 직장생활을 한 이후 처음 통장의 잔고가 채워지는 것도 보게 되었습니다. 괴로움과 두려움 대신 말씀 안에서 안식을 누립니다. 빼앗겼던 삶이 다시 제 궤도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시간을 한 순간에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저와 같은 문제로 힘들어하는 형제 자매가 있다면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부디 한시라도 빨리 돌아오십시오. 값싼 위로에 속아 영원한 생명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더 많은 것을 잃기 전에 속히 말씀 앞으로 돌아오십시오. 아직은 참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저는 혼자가 아닙니다.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늘 함께합니다. 언젠가 바울처럼, 예수의 흔적을 지닌 자라고 당당히 선언할 수 있게 될 소망을 품고 오늘도 달려갑니다.